7층
오사 게렌발 지음
데이트 폭력을 고발하다
7층
국제앰네스티 참여로 제작된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증언과 보도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충분히 교훈적인 특성을 살려내고 있다. 그녀가 폭로한 것 이상으로 연인들 간 폭력의 문제점들을 명명백백히 드러내놓았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이 점차 사회적으로 노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발설은 여전히 개인적인 금기 현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폭력 현상은 단지 스웨덴이나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최근 여성 인권을 위한 세계 캠페인에서 국제앰네스티는 이러한 폭력에 대해 시사하고 이와 같은 문제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데 기여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오사 게렌발의 책에 후기를 쓴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책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이 국가와 사회는 이처럼 매우 널리 퍼진 폭력의 형태를 예방하고 고발하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며 폭력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이런 현상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오사의 이야기는 불행하게도 전대미문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연일 폭력에 시달리는 가운데 사랑이 점차 일상의 지옥으로 변질되어가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
민감한 감성을 파헤친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충격적인 경험에 사로잡히게 하며 흔히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행되는 폭력을 고발할 수 있게 해준다. (중략)
오사는 여기서 어려운 용기를 보여준다. 침묵을 깨고 스스로 그러한 폭력의 함정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인정받고 그들로부터 동조를 구할 수 있을 때만이 폭력에 대한 폭로가 가능하다. 따라서 바로 우리들, 가까운 친구나 친척, 이웃의 협조가 전제되어야 하며, 경찰이든 의사이든 판사이든 폭로의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전문가들의 이해가 절실하다. 말하자면 전 사회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 국제앰네스티 프랑스지부
순수한 사랑이 폭력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려운 용기 내는 오사
새로 들어간 학교에서 오사는 마침내 자신감을 갖게 되리라 느낀다. 저녁 파티 중에 잘생긴 닐이 그녀를 유혹하고 그녀는 곧 사랑에 빠진다. 닐은 그녀를 지켜주는 기사가 된다. 그와 함께 오사는 미래로 뛰어드는 데 더 이상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때때로 그는 오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들에 이상한 반응을 한다. 순수한 사랑이 차츰차츰 기만적인 악몽으로 변해간다. 그녀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오사는 닐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할 만큼 그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원하는 형태의 여자가 되기 위해 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닐은 그녀를 모욕하고 욕을 퍼붓는다. 오사가 복종할수록 그는 더 폭력적이 되어간다. 급기야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기까지에 이른다. 어느 날 그의 폭력이 갈 데까지 가자 오사는 마침내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용기를 낸다. 그렇게 하여 자신을 재건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는데…
두려움, 발광, 절망, 폭로 그리고 유머를 그래픽 아트로 승화시키다
이 책은 기만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정확하고도 강도 높게 폭로하고 있다. 일종의 일기를 만화로 승화시킨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내면 깊숙한 데서부터 오는 자기 자신의 파괴에 대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느끼게 한다. 표현력 넘치는 그래픽 아트의 강렬하고 극적인 이야기를 결코 경박함을 드러내지 않은 채 풀어내고 있다. 두려움, 발광 혹은 낙담을 표현하기 위해 오사 게렌발은 불균형한 그림의 힘을 이용한다. 이를테면 한쪽 눈이나 입꼬리가 기괴하게 커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때때로 인물은 분해되고 눈은 침몰하기 시작한다. 문자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은 신랄한 형태로 각자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오사가 재건의 작업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탐구를 통해서다. 그녀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쳤던 블랙 오사가 되어야 한다.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 머리에 검은 눈화장과 문신을 한. 그러나 인물의 단단함과 자기 자신을 절단해 구성해나가는 것 사이의 긴장이 그녀를 끊임없이 위태롭게 한다.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흔히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홈리스로 사는 것,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것, 일자리가 없는 것, 우울한 상태로 사는 것… 이러한 상황을 원해서 경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임파워먼트에 대한 생각을 했다. 멀쩡한 사람이 자신을 억압하는 다른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순식간에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 주변의 한두 명에 의해, 법과 제도에 의해,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집단)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반복적으로 억압하고 학대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나 처벌을 받지 않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와 같은 제3자의 역할이다. 두려움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신 말해주고 함께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활동이다. – 김희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이 책의 주인공인 오사 게렌발이 겪은 일은 비단 유럽의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그리고 세계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는 한 이는 보편적이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7층』은 전 세계에 만연한 연인 관계에서의 언어 및 물리적 폭력이라는 주제를 만화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만화와 여성주의가 따로 또 같이 갖고 있는 전통적 정형들, 즉 만화는 유치하고 아이들이 보는 것이며, 여성주의는 가르치려만 들어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주었다. 그렇기에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만화가 바로 『7층』이다. – 김선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7층』은 우리가 함께 나누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자매와 함께, 친구와 함께, 딸과 함께.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있거나, 언젠가 사랑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고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으로 변질되어 우리를 지독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인기 여성 만화가인 오사는 ‘오사가 어떻게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우리의 사랑이 혹시나 병들고 기이하게 왜곡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사랑’의 정의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걸 우리는 왜 자주 깜박하는 걸까. 『7층』은 우리 모두에게 온전한 사랑의 정의를 깨우쳐준다. – 김숨(소설가)
무거운 짐이 되었던 청춘의 한때를 경험하고 힘겹게 재건에 성공하다
7층은 오사가 뛰어내리려고 했던 층이다. 오사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친구가 그녀를 고문하는 공간인 심리적 감옥에 갇혀 있다. 오사 게렌발은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예술 공부를 위해 부모님 곁을 떠나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똘똘 뭉친 닐이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와 함께 청춘의 한때를 보내는 이야기. 그녀는 우선 그들이 사랑의 관계를 쌓아가던 시기의 행복을 묘사한다. 그러나 어느새 닐은 그녀의 외모와 행동에 대해 기만적인 표시를 보임으로써 그녀로 하여금 의혹을 품게 만든다. 명령을 하고 구타를 한다. 작가는 어떻게 폭력이 일상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며 어떻게 남자가 서서히 자기 동반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그녀의 살점을 물어뜯었을 때 그녀는 마침내 그를 떠날 결심을 하고 힘겹게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다.
– 지금 장난해?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느냐고! 나를 바라봐야 할 거 아냐! 안 그러면 네가 진짜 나만 생각하는 건지 어쩐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 옆에 다른 남자가 지나갈 땐 날 껴안지 마! 알아들어?
– 어… 알았어…
– 머릿속으로는 내가 아니라 그 남자를 상상하고 있는지 누가 알겠냐고! (p. 17)
얼마가 지나자 나는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다. “블랙 오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나 또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틀에 짜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닐과 함께. (p. 29)
– 이건 또 뭐지? 낙태 책이라! 도대체 몇 번이나 낙태를 한 거야, 이 창녀 같으니라고!
– 말도 안 돼. 낙태라니, 그런 적 없어! 그냥 공부하려고 했을 뿐인데…
– 제기랄! 낙태를 해본 적이 없다면 이런 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 (p. 32)
밖에서 우리는 완벽한 커플로 보였다. 우리는 항상 둘이 붙어다녔다.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를 만나러 달려갔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행여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말이라도 섞을까봐 불안해할 테니까. 나는 항상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대뜸 내가 다른 남자들을 쳐다본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내가 심통이 나 있거나 뭔가 불만이 있다고 여길 테니까. (p.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