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안송 – 정율성 이야기
박건웅 만화
옌안송 – 정율성 이야기 | ISBN 979-11-86843-38-3 07910|발행일 2019. 05. 31. | 156*210|450면|값 16,000원|
기획부터 제작까지 3년의 시간을 걸쳐 3.1혁명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에 박건웅 작가님의 신작 그래픽노블 <옌안송 – 정율성 이야기>가 드디어 우리나비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항일 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아 조선인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고의 음악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자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낯설지만 13억 중국인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 정율성(鄭律成)의 발자취를 밟아 엮은 450쪽가량의 묵직한 흑백 그래픽노블입니다.
이 작품은 박건웅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정감 어린 그림과 손 글씨를 통해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이념 대립의 그늘 속에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율성이라는 한 인간의 삶의 전반을 마치 한 편의 흑백 장편 영화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하면 총, 칼, 폭탄, 암살 등의 무력 항쟁이 먼저 떠오르는 가운데 ‘예술’로도 항일 투쟁을 벌일 수 있다는 부분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물들인 김구, 김규식, 김산, 무정, 윤세주, 주덕해, 박건웅(정율성의 매형), 그리고 당대 중국을 책임졌던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걸출한 중국 정치인들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명 정부은, 이명 유대진(劉大振)으로도 불렸던 그가 태어났을 당시 조선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였다. 그의 가족은 형들(효룡, 인제, 의은)이 모두 독립투사로 헌신하였고 누이(봉은)의 남편(박건웅)도 항일투쟁을 벌인 열혈 혁명가 집안이었다. 자존감 높고 일제를 부정했던 그 역시 광주 숭일소학교를 졸업한 후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1933년 19세의 나이로 셋째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음악(律)으로 성공(成)하라
중국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한 정율성은 의열단원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도청 정보 수집 등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비교해 남다른 차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음악적 역량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피아노와 성악을 열심히 공부했다. 정율성의 음악적 조예를 높이 산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은 그에게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의미로 율성(律成)이란 이름을 지어 줬으며, 그는 아름답고 힘찬 음률을 이뤄 인민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김원봉은 그에게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인 크리노바 교수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었다. 타고난 음악성을 인정받은 정율성은 크리노바 교수로부터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유학 갈 것을 제의받지만, 겨레를 위한 독립운동의 신념과 의지가 컸던 바, 그는 결국 이탈리아행을 거절하고 만다.
주옥 같은 작품의 탄생
중일전쟁 발발 후 정율성은 김원봉의 의열단을 뒤로하고 1936년 10월 중국 공산당 본부가 있는 옌안으로 간다. 당시 옌안은 중국 각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항일 혁명의 성지로서, 중국 인민에게 있어 희망의 도시였다. 옌안에서의 생활은 몹시 궁핍하고 어려웠지만, 이곳은 그의 음악적 자질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곳으로, 옌안의 들끓는 혁명적 분위기는 정율성의 마음에 창작의 불씨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섬북공학을 거쳐 루쉰예술학원에서 수학하던 그는 당대 최고의 유행가인 <옌안송>을 만들어 이름을 알린다.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전투적 기개가 물씬 풍기는 이 곡은 중국인들은 물론 심지어 일본인들조차도 따라 부를 정도로 그 인기가 실로 엄청났다. 국공합작 이후 옌안과 태항산에 있는 팔로군 본부를 오가며 항일 운동을 하던 그는 인생 최대의 역작 <팔로군 대합창>을 작곡하게 된다. 총 8개 곡으로 구성된 <팔로군 대합창> 중 특히 날개 돋친 맹호가 전진하듯 힘차고 장엄하게 시작되는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 군가로 채택되었고 1988년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인민해방군가 비준을 받게 된다.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
음악적 성취의 이면에는 조선인으로서 중국에서 살면서 맞게 되는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중국인들의 면면을 몸소 배우고 그들과 동화되어 음악적 감수성 전달에 있어서 언어 차이가 주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옌안 생활 당시 그는 저우언라이의 양딸이자 항일군정대학 여학생대대장이었던 정설송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두 사람은 국적도 서로 달랐거니와 율성이 정신적으로 따르던 장명(김산)이 일본 스파이 혐의를 받아 처형되는 일을 겪으면서 자신도 그와 친했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는 가운데 둘의 사랑은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정 장군의 도움과 주변의 격려 덕분에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슬하에 딸을 두게 된다.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정소제 여사가 바로 그의 딸이자 유일한 혈육이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올린을 뜻하는 중국어 ‘소제금(小提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시절 모유가 나오지 않아 정율성이 아끼던 바이올린을 팔아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있다.
해방된 조국, 계속되는 혼돈
해방 이후 정율성은 북한으로 귀국해 황해도 해주에서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그러나 아내가 한국말이 서툴러 고초를 겪는 가운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중국으로 돌아간다. 한국 전쟁 당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전선에서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 인민지원군 행진곡> 등을 창작하기도 했던 그는 1951년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이는 김일성의 옌안파 숙청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대가 찾아온다. 갈수록 독재화되고 사상문화계 지식인들이 숙청되는 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러한 시련은 그에게도 역시 감내해야 할 몫으로 다가왔으며 그는 ‘이것은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문화대학대이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정율성은 중국 전통 음악 및 동요 등을 작곡하며 중국 음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냥과 낚시 등 수렵에도 능했던 정율성은 중국 정치계의 거장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해인 1976년, 베이징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돌연 쓰러져 62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예술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
중국 대륙에서 항일 전사이자 혁명 음악가로 활동했던 정율성의 삶을 그린 그래픽 노블 <옌안송: 정율성 이야기>는 박건웅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정감 어린 그림과 손 글씨를 통해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이념 대립의 그늘 속에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율성이라는 한 인간의 삶의 전반을 마치 한 편의 흑백 장편 영화처럼 그리고 있다.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하면 총, 칼, 폭탄, 암살 등의 무력 항쟁이 먼저 떠오르는 가운데 ‘예술’로도 항일 투쟁을 벌일 수 있다는 부분이 새롭게 다가온다. 또한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물들인 김구, 김규식, 김산, 무정, 윤세주, 주덕해, 박건웅(정율성의 매형), 그리고 당대 중국을 책임졌던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걸출한 중국 정치인들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정율성은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계열이었음은 이미 공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존했던 항일 업적과 노고는 사회주의자란 낙인 아래 금기시되고 역사의 사각지대에 묻혀 왔다. 일제에 의해 이역만리 중국으로 내몰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불살랐음에도 정작 자신은 해방 후에도 조국 땅에 살 수 없었던 정율성. 남과 북의 체제 경쟁의 승패가 이미 결정 난 지금, 그리고 남북 간 종전과 평화 및 화합으로 매진해야 하는 오늘날, <옌안송: 정율성 이야기>는 이념을 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기리는 것이야말로 후세된 자로서 응당 취해야 할 온당한 일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책이다.
작가의 말
100년 전 일제의 폭압이 난무하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던 엄혹한 시대가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고 했던가… 그들에게 있어 낯선 땅 조선에서 온 어느 한 사람의 노래는 마치 새벽별처럼 절망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삶의 희망으로 서로를 결속시켰을 것이다. 행여 어떤 사람들은 총칼로 싸우던 준엄한 시대에 음악이라는 것은 고작 사치에 불과하며 자유로운 나라를 되찾는 일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본성을 잃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일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끈은 바로 예술이었기에 결국 한 사람의 노래는 총칼보다 강했고 혁명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었다.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2019년 3·1혁명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것이 단지 기념을 하기 위한 거창한 한 해가 아닌, 100년 전 못 다 이룬 많은 사람들의 꿈을 다시 이루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감수자의 말
1919년 11월 중국 길림시의 반(潘) 씨 성을 가진 중국인 집에서 단장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투사들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그 후 의열단은 여러 차례 변모하면서 1932년 난징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이곳에 자신을 단단한 독립투사로 만들기 위해 한 청년이 입학하였다. 바로 정율성이다. 중국의 국민가요 <옌안송>을 만들었으며, 정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그는 지금도 한국과 중국인들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남부에서 태어나 대륙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는 해방 후 한반도 북부에서도 생활하였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고향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20세기를 관통한 ‘작은 영웅’ 정율성의 이야기를 의열단 100년에 소환해서 기억하는 ‘작은 발걸음’의 시작이며, 이것이 고향을 뒤로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정율성에 대한 작은 예의가 아닐는지.
-김주용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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