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지음
정서적 방치!
모든 것은 무관심, 불안, 결핍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 내면의 아이를 향한 위로와 치유
감정 장애를 가진 부모 아래서 아이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침묵과 무관심으로 둘러싸인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자신의 존재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치심을 느껴야만 한다면?
오사 게렌발 자전적 그래픽노블의 정점이라 할 만한 신간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어떤 물리적인 학대도 없고 사회적인 문제도 없는,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족 관계 속에서 파괴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제니의 성장기를 다룬다.
인간관계에 서툴고 자기비하로 가득 차 있는 제니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 간의 기이한 현상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왜 그토록 불안과 욕구 불만 증세에 시달려왔는지, 부모님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받아들이는 시점에 다다른다.
올해 최고의 책(라디오쇼)
굶주린 영혼에 대한 뛰어난 묘사(투데이즈 뉴스)
깊은 성찰과 치유(스웨덴 데일리뉴스)
진정한 예술(라디오 컬처 뉴스)
게렌발의 신작은 항상 놀라운 반향을 일으킨다(이브닝 뉴스페이퍼)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비애(뉴스페이퍼)
현대사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북 팟캐스트)
소리쳐 울 권리조차 빼앗겼던 아이를 위한 사랑의 공표
내 책들은 거의가 내 이야기다. 그러나 각기 다른 구성에 인물들 또한 저마다 다른 특색을 띠고 있다. 내 책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내 삶에 대한 내용이라고 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매번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주인공의 이름은 제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또 다른 책 『가족의 초상』 주인공의 이름은 마리다. 『가족의 초상』은 나의 다섯 번째 책이고 스웨덴에서 2005년 출간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건대 전작은 마리한테 너무 야박하기만 하고 오히려 부모님 편에 더 치우치지 않았나 싶다. 신간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아이 쪽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어린 제니에게 절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제니는 평생 자기한테 잘못이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사랑을 한층 더 표현했다. 평생 방치되어왔던 ‘내면의 아이’를 위로하고 돌봐주었다.
(…) 특별히 이 책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자부한다. 투쟁은 고통스럽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삶과 투쟁하는 데 있으며 그 투쟁은 또한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 저자 후기 중에서
스웨덴 흑백 그래픽노블의 대가 오사 게렌발이 그려낸 불안과 절망, 파괴의 심리
오사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불편한 마음이 일게 하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흑백의 캐릭터로 소박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냉혹하고 가차 없다. 하지만 날카로운 유머와 섬세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 모든 구도가 곧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불안감, 정서적 장애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오사 게렌발이 스웨덴 만화 예술의 중심이자 심리 그래픽노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면모에서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오사는 이 책에서 더 냉철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엿보게 한다. 제니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리적인 학대를 받은 일도 없으려니와 엄마 아빠가 자기 몸에 손을 댄 적조차 없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절망의 흔적뿐이다. 이 책은 제니가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굶주리며 파괴적인 삶을 살아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대화는커녕 부모의 등 뒤만을 바라보며 무관심으로 일관된 일상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그로 인한 정서적 장애를 생생하게 그려낸 충격적 그래픽노블이다.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니가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니는 뜻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사용했던 아기 침대를 조립하다가 침대에 난 자국을 발견하면서 제니의 생각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학교 일이든 친구들과의 일이든 제니가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엄마 아빠는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로써 제니는 의사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가족사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제니는 자신감을 잃고 무엇이든 논쟁을 일삼는다. 딸이 그토록 힘겨운 십대를 보내고 있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데만 급급하고 아빠는 언제나 회피한다. 제니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는 스스로가 고립되어가는 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제 어른이 되어 아이에게 정성을 쏟는 자신을 돌아보며 제니는 왜 자신의 어린 시절은 늘 삭막하기만 했는지, 어째서 위로와 안도의 경험은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결국 제니는 다시 한 번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정서적 방치’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뒤엉켰던 기억의 퍼즐들을 짜 맞춰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면에서 울부짖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긴 등반을 시도한다.
충격적인 어린 시절, 보이지 않는 폭력의 잔인함을 폭로하다
제니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혼자 스스로 배워나가는 훈련을 한다. 부모에게 한 번이라도 관심을 받아본 일이 없다. 호기심은 사치일 뿐 응답 없는 질문에 늘 고통받아야 했다. 엄마 아빠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의지해 의사소통의 귀를 열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 표시는 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야 했고 부모님은 의논 상대가 되어줄 ‘어른’이 아니었음을 일찍이 알았다. 그렇게 제니는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누구에게든 도움을 바라서는 안 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쟁취할 수 없었던 제니는 사랑에 대한 굶주림을 불만과 반항 그리고 자포자기로밖에 나타낼 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제니는 악을 써대고 아버지와 동생은 자리를 피하고 엄마는 눈물을 보이기만 하는 연출이 반복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무대가 오사의 정교한 그림과 텍스트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당장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알아줄 사람 하나 없으리란 가정하에 가상 실험을 감행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내가 죽어 누워 있는 모습이 과연 언제 발견될 것인가… 나를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1주, 2주, 3주… 두 달이 지나도록 나를 찾는 전화나 이메일 한 통 없다…
이 책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것이지만 줄곧 어둡고 가슴 아프다. 더 이상의 무모한 희망을 포기하자 마침내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과연 자녀의 생물학적 부모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도 된다. 아이를 방관하고 방치하는 데에 따른 막중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이며 또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할 길이 없어 위축되기만 하는 아이의 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무관심의 폭력, 그 잔인함에 전율이 일 정도지만 잘못된 건 자신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주변이라는 아이의 외침에 응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정서적 방치’라는 진단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철저히 외면당한 제니는 다른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비관하고 절망 끝에 선다. 그 어디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찾을 수 없는 가운데 제니는 점점 더 통제하기 힘든 사춘기를 겪는다. 아이들의 요구와 바람을 이해하기는커녕 등을 돌리는 부모, 그래서 위로와 격려 같은 것을 결코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제니는 감정 표현이라는 걸 모른다. 의견을 표출하고 생각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제니는 소통의 창구로 TV를 시청하거나 몰래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적어 보낸다. TV나 라디오에서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른과 상의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제니는 그 ‘어른’이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 ‘어른’이 부모님이라는 걸 알지만 엄마도 아빠도 자신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형성된 불안 증세는 성인이 되어서도 따라다니고 결국 몇 차례의 정신과 상담을 거쳐 그 원인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원만치 못한 유대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서적 방치’라는 진단. 이제야 제니는 그토록 고통받아온 내면의 아이를 끌어내어 스스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고 마침내 치유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정서적 방치는 부모에게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상이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라는 제목은 제니가 밤마다 몰래 부모님 침대로 기어들어가 등 돌린 채 잠든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친밀감의 욕구를 채우려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를 충전하기라도 하듯이. 제니는 가족과 대화라든가 포옹을 나누어본 적이 없다. 살을 맞대본 일조차 없다. 힘겨운 십대, 실질적으로 무언의 폭력을 휘두른 장본인은 바로 부모였다. 이 모든 게 끔찍한 이야기지만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일이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통렬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만큼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 사려 깊은 책이다.